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를 체포하기 위한 북파공작 부대인 HID의 최정예 요원이 투입될 계획이었음을 주장했습니다. 오늘은 윤석열의 계엄에서 투입하려고 하였던 HID 부대란? 위치 I 계엄 북파공작 부대 투입 계획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HID 부대란? 위치 I 계엄 북파공작 부대 투입 계획
HID 계엄 북파공작 부대 투입 계획 폭로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자신이 받은 제보에 따라, 707 특임단이 아닌 별도의 체포조가 준비되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체포조는 정보사 예하의 특수정보부대인 HID로, 과거 북한의 요인을 납치하거나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한 전문 부대였습니다. HID부대는 간단히 영화 실미도의 부대, 영화 아저씨의 원빈이 소속되어 있던 부대 입니다.
김병주 의원은 정보사와 관련된 고위 인사로부터 받은 제보를 통해, HID 부대의 최정예 요원 20명이 서울의 한 장소에서 대기 중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습니다.
김 의원은 제보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온 것이라며, 정보사령관과 정보사 핵심 대령급 인사들이 해당 작전에 관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 명령의 주체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며, 더 깊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의원은 이 사건이 만약 국회가 점령당하고 비상계엄이 계속될 경우, HID 부대가 국회의 요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12월 4일 아침에 투입될 수도 있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HID 부대가 투입될 가능성에 대해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언급했습니다.
HID 부대란?
현재 대중적으로 HID라는 명사는 육군 산하로 존재했었던 수많은 각기 다른 북파공작 관련 부대들을 모두 지칭하며 통용되고 있으나 그 부대들은 분명히 각기 다른 부대들입니다.
육군 첩보부대가 HID(Headquarters Intelligence Detachment)라는 명칭을 사용한 기간은 1950년 7월부터 1961년 7월까지며 1961년 7월, HID라는 명칭을 폐기하고 AIU(Army Intelligence Unit)로 변경하였습니다.
켈로가
김일성 마빡에다 대검을 꽂고
유유히 돌아오라 켈로의 용사
적진 속을 마음대로 누비는 우리
남포동의 밤거리는 모두 나의 것
장하다 그 이름 켈로의 용사
HID는 직할대와 36 지구대, 18 지구대 등 여러 지대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각 군단과 사단에 이러한 지대들을 파견했습ㄴ;디.
1. 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몸과 맘을 다 바친다.
2. 나는 배신 없이 의리 지켜 진실하게 살아간다.
3. 나는 음지에서 싸워 이기고 양지에서 영광 누린다.
HID 부대 역사
HID 북파공작원이란?
HID는 'Human Intelligence Detachment'의 약자로, 인간정보분견대를 의미합니다.
북파공작원은 말 그대로 북한으로 파견된 공작원을 뜻합니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냉전 시기에 북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대남 침투를 막기 위해 극비리에 활동한 특수요원들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HID소속 첩보부대는 30여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HID 직할대가 제1교육대였고 36 지구대와 18 지구대는 각기 동해안과 서해안 지역을 맡아 첩보활동을 벌였습니다.
HID 제1교육대는 1952년 10월 말경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청수장에서 창설되어 1953년 6월까지 3기의 교육생을 배출하게 됩니다. 교육생들은 공수훈련·유격훈련·중요건물 및 교량폭파·도피 및 탈출·사살·납치·교란·사격술·독도법·도둑질 등의 특전유격훈련과 공작에 필요한 훈련, 정신교육 등 16주 과정의 공작원양성교육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대원들은 일당백으로 한 명에서 여러 명을 참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한민국 최고의 정예 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HID는 구체적으로 훈련 시 분대별로 행동했는데, 야간에 북한산 계곡을 누비는 행군을 했으며 담력을 키우기 위해 야영할 때는 동굴에 낙엽을 깔고 담요 한 장으로 몸을 덮고 돌멩이나 해골을 베고 잤다고 합니다.
멋있게 싸우고 값있게 죽자.
훈련을 마친 제1기생은 1953년 봄 김종벽 소령의 인솔하에 2개 중대로 나뉘어 제1중 대원들은 해주 앞 용매도에, 제2중 대원들은 진남포 앞 쥐라도 등 서해안으로 침투했습니다.
제2기생들은 평안북도 묘향산 일대에 공수낙하하여 침투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기상악화에 의해 일부만 투하되었고, 일부는 원산 앞 여도에 합류하였습니다.
제2기생 일부는 휴전 후 설악대원으로 해상·육지로 침투작전에 참가했습니다.
제3기생은 김석환 대위가 이끌고 원산 앞 여도에 침투했던 사람들이다. 한국전쟁 중 HID요원들은 그 당시 한국군이 갖고 있던 장비가 열악해 주로 미군 등 유엔군의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해 공중과 해상으로 북한지역에 침투하였습니다.
한번 물면 끝장을 보자
설악대는 영도에서 철수한 제1교육대원들과 일부 잔류병들이 그 후 36 지구대 예하부대로 개편된 것으로 휴전 후 침투공작을 주로 담당해 여러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10명 내외의 조별로 활동했는데, 다른 조의 활동에 대해 서로가 전혀 몰랐으며 교육내용은 제1교육대와 별 차이가 없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설악대의 대표적인 전과는 1954년 5월 김윤탁 소대장 외 5명이 장전항 인근에 침투하여 인민군 대좌를 생포한 사건입니다.
이 전공으로 김동석 36 지구대장(소령)은 1954년 5월경에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육군 첩보부대가 1961년 7월 HID라는 명칭을 폐기하고 새로 지은 명칭이 AIU(Army Inetlligence Unit)입니다.
그러다가 1972년, 육군 산하 정보부대를 통합해 육군 정보사령부 AIC(Army Inetlligence Command)를 탄생시켰습니다.
AIC는 1990년, 육해공군의 정보부대를 모두 통합시킨 국군 정보사령부 DIC (Defence Intelligence Command)로 흡수됩니다.
HID 부대 훈련 및 정보수집
북파공작원의 선발과 훈련
북파공작원이 되기 위한 과정은 매우 엄격하고 고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이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었을까요?
선발 기준은 북파공작원은 주로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들 중에서 선발되었습니다.
신체 조건이 우수하고 정신력이 강한 이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습니다.
훈련 과정은 선발된 이들은 극비리에 진행되는 특수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훈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 북한의 언어, 문화, 생활 습관 학습
- 무술과 생존 기술
- 암호 해독과 통신 기술
- 잠입과 탈출 기술
- 심리전 및 정보 수집 방법
정신 교육: 북파공작원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철저한 사상 교육과 정신 훈련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북파공작원들은 목숨을 걸고 북한으로 잠입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요?
HID 부대 주요 임무
북파공작원들의 임무는 매우 다양하고 위험했습니다.
주요 임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보 수집: 북한의 군사 시설, 경제 상황, 정치적 동향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 대남 침투 저지: 북한의 대남 침투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심리전 수행: 북한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 탈북자 지원: 북한을 탈출하려는 주민들을 돕고, 이들을 통해 추가적인 정보를 얻었습니다.
- 파괴 공작: 필요에 따라 북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거나 무력화시키는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임무들은 모두 극도의 위험을 동반했습니다.
북파공작원들은 언제나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북파공작원들의 구체적인 활동 사례는 대부분 기밀로 분류되어 있어 자세히 알려진 바가 많지 않습니다.
북파공작원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생명의 위협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많은 이들이 귀환하지 못했습니다.
체포와 처형의 위험
북한에 잠입한 공작원들이 발각될 경우, 대부분 가혹한 고문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가족과의 단절
임무의 특성상 가족들과 완전히 단절된 채 살아야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족에게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밝히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신적 트라우마
극한의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많은 북파공작원들이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사회적 인정 부재
임무의 비밀성으로 인해 그들의 공로를 공개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많은 이들이 무명의 영웅으로 살다 갔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북파공작원들은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헌신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안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마무리
지금까지 HID 부대란? 위치 I 계엄 북파공작 부대 투입 계획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대한민국 HID 북파공작원들은 우리 현대사의 숨겨진 영웅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조국의 안전과 평화를 지켰습니다. 비록 그들의 이름과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토대가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런 대한민국의 중요한 군인들을 계엄령에 사용하려고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은 충격적입니다. 하루빨리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처벌하여야 할 것입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포스팅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이 블로그 조회수 많은 다른 인기글 보기 ↓